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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업 1일차)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볼리비아.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
    기록 2019. 10. 23. 12:56

    지난 주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개표 도중 

    개표결과 송출이 멈칫하더니 숫자가 갑자기 바뀌어서 나왔다.

    잇달아 표바꿔치기 의혹도 제기 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상황은 이랬다.

    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45.3%, 대항마 카를로스 메사가 38.2% 기록하던 도중

    시스템이 멈추었고

    이어서 나온 숫자는 에보 모랄레스가 46.86%, 카를로스 메사가 36.72%였다.

     

    이 곳 선거 시스템에서 첫번째 득표율이 50%를 넘지 않을 경우, 그리고 1위와 2위의 득표차가 10%이하 인 경우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거의 10% 이상의 득표차를 보이는 결과가 발표된 것이었다.

    이에 시민들은 개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분노하였다.

     

    각 시민단체 장들이 긴급 회의를 열고..

    그리고 내일(지금으로부터 30분 후) 전국 파업이 있을 예정이다.

     

    작금의 사태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외국인으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과

    신부로서 살고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이 개혁의 움직임이 필요한 과정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낀다.

    어떤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지금 이 상황을 통해

    나에게 새로운 부르심을 건네고 있음을 생각한다.

    이 현실을 같이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길임을 생각한다.

     

    결국 이 혼란을 틈타 제 이익을 챙길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제 목숨을 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들 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볼리비아 살이가 3년을 넘게 그리고 4년이 다 되어가는 요즈음

    나는 스믈스믈 기어오르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나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전혀 다른 문화 안에서 소통하기란 수박 겉핥기 식이 되기 쉽고

    나는 그저 나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

    3년을 넘어서는 지금 저 밑에서부터 턱 밑까지 차오르는 이 감정을,

    이제는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이들을 참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커다란 빚처럼 나에게 돌아와 내 어깨를 짓누른다.

    나 자신이 싫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몰랐을 나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보통 길어야 2년. 주임신부가 되어선 길어야 5년 한 본당에 머물게 된다.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떠날 시기가 온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아는 방법 익숙한 방법을 적용하다 시간을 빠르게 보낸다.

    인간적인 밑바닥을 보기 전에 새로운 장소로 옮긴다.

     

    이 방법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민낯을 마주하는 것은 참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알아버렸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신부로서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

    환상에 젖어 살던 과거가 부끄럽다.

     

    적어도 희망적인 것은,

    내 본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

    이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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