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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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생각 2023. 11. 8. 12:22
매달 한번 병자방문을 한다. 유독 오늘 방문 때, 사람들이 너도 나도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글썽인다. 문득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보았다. 루틴이라 할 것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내는, 처방전에 따라 약 먹는 시간이 규칙의 전부였을, 무상한 그들의 하루를 상상해보았다. 그 늘어진 시간 속에서 지난 일을 생각하고 예전 일에 자책하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그들을 생각해 보았다. 보통의 일상에는 해야할 일이 있고 하고픈 일이 있어 그 빈자리를 휴식이라 부른다. 그런데 해야할 일, 하고픈 일이 다 사라지면 휴식도 사라진다. 그 시간 덩어리를 견디어 내는 것은 여느 일보다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일에 정신을 파는데 익숙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쇼트’에 정신을 파는 시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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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생각 2021. 3. 23. 09:43
횟수, 숫자, 결과물을 헤아리고 재고 가늠하는 행동 자체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확신 혹은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수치화 시킴으로써 나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는 인간의 본능이랄까. 즉, 본능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편하고 불편하고가 수치보다 더 (어떤 의미에서는) 정확하다. 성과 몇프로 달성, 이윤을 얼마나 남겼다, 범죄율이 줄었다 등등 눈으로 확인할 것들을 찾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남들이 보기에 뚜렷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편한 길을 선택한다면 후회는 적을 것이다. '내 마음이다' 라는 말이 개인을 더 부각시키는 말이 되어버린 것은 우리들의 큰 실수가 아닐까.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인 것이고 마음을 가꾸는 것 외에 우리 인생에 주어진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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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감정생각 2021. 1. 5. 06:30
현실이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가까이 살고 시간을 나누고 서로를 아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차라리 영화의 특수효과가 더 현실감 있을 것처럼, 나는 이 곳에서 멀어져 붕- 떠버리고 만다. 오늘 아침, 구역 반장이었던 한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동안도 신장투석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남편은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고 작은 아들은 자기 여자친구를 임신 시켜서 동거를 막 시작했다. 최근에 했던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병원 입원도 거부당하기도 했다. 2017년 남미 선교대회가 볼리비아에서 열렸을 때 우리 본당 봉사자로 일하면서 그 자매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서로의 선교체험을 나눌 때 친척집이 개신교인데 그곳에서 함께 복음을 나누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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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고통생각 2020. 8. 7. 13:36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분열. 고통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누구의 고통이 더 크고 누구의 고통이 작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을 수치화시켜 비교할 수 없다. 고통은 내 앞에 버티고 서서 내가 온전히 그것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생각하는 것은 분열이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주는 고통이 더 작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고통이 낳는 삶의 열매들을 볼 때 분열은 어떤 열매없이 살아있는 것들을 말려버리는 힘을 지녔기에, 그 고통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치병을 통해 삶을 다시 보고 주변의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는 경우들. 실수를 통해 겪은 고통을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는 사람들. 이렇듯 고통은 열매를 낳지만 분열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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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바라던 재앙생각 2020. 4. 12. 01:00
주일학교 아이들이 우리들(태권이형, 건호 그리고 나)에게 사제의 날 축하 영상편지를 보내왔다. 자가격리 상황 속에서 서로 마음을 모아 보내준 메시지들이 참 소중하고, 모두 예수님을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어색한(?) 성주간을 보내면서 우리 믿음의 현실, 그 발 붙일 곳을 생각 또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게 거행되어져온 전례들, 그 수많은 상징들을 단순히 못하게 되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또는 지금은 못하니까 할 수 있었던 과거를 감사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이 뿌리를 내리는 곳은 과연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점을 새롭게 깨닫는다. 홀로 구원되는 사람은 결코 없듯이, 우리 사이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토록 개인화 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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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는 별개로생각 2019. 8. 24. 13:02
오늘 미사 후 견진반 교리를 마친 뒤 한 신자가 이야기 좀 할 수 있느냐 묻는다. 여러 대화가 오가던 중 오늘 신부님 강론을 들으며 힘을 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그로부터 서너시간 전, 나는 바쁜 나머지 강론을 잘 준비하기 보다는 간단한 나눔을 강론 때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집에서 성당으로 나서고 있었다. 아주 가끔 이런 체험을 한다. 내 노력과는 별개로 성령께서 혹은 누군가가 일하심을 느끼는 체험. 그럴 때 나는 주님의 일하심이 참 신비롭다는 생각을 한다. 딱 들어맞지 않는, 점괘스럽지 않는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신비로움.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안심되는 그런, 든든함. 그런 감정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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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과 부활은 하나생각 2019. 4. 23. 14:20
어김없이 부활절은 찾아왔다. 시간은 이렇게 성실히 흐른다. 점점 사순과 부활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술 끊기, SNS 안 하기, 묵주 바치기... 여러 실천사항을 만들어 놓고 이루었나 하지 못했나 체크하던 그런 사순시기를 여럿 보냈다. 물론 실천은 나를 도와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이루었나 그러지 못했나는 첫자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자기 수련에 불과하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순간이 사실은 그분께 가까워지는 연결고리이고 내가 이래 저래 해보는 것들도 성공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순과 부활은 하나다. 예수님이다. 그 둘을 갈라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악에 가까워지는 행동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느님이 상벌을 주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순을 잘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