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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가까이 살고 시간을 나누고 서로를 아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차라리 영화의 특수효과가 더 현실감 있을 것처럼,
나는 이 곳에서 멀어져 붕- 떠버리고 만다.
오늘 아침, 구역 반장이었던 한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동안도 신장투석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남편은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고
작은 아들은 자기 여자친구를 임신 시켜서 동거를 막 시작했다.
최근에 했던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병원 입원도 거부당하기도 했다.
2017년 남미 선교대회가 볼리비아에서 열렸을 때 우리 본당 봉사자로 일하면서
그 자매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서로의 선교체험을 나눌 때 친척집이 개신교인데 그곳에서 함께 복음을 나누면서 기뻤다고 나눔도 했었다.
신장 투석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건강을 조금 회복했을 때는 미사도 꾸준히 참석했다.
며칠전 성탄절날 그 집에 인사하러 갔더니 큰 아들과 외출을 했다고 해서 만나지 못했다.
그 때 만나지 못했고, 이제 영영 볼 수 없다.
오늘 아침은 비가 내렸다. 지금도 드문드문 비가 내린다.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더 안타깝고 덜 안타까움이 있으련만,
내 마음은 빗소리가 잦아들듯 점점 더 아파온다.
좋은 일, 기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나의 못남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고
아파하는 내 이웃들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그 사람이 계속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이나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를 마비시키는 것과 같다.
지금 일어난 일을 받아 안고 남아있는 이들과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
더 묵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정도면 되었다'는 것은 이 삶에 없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한,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이 만족스러웠던 지난 날들이
부끄럽다.
이 묵직한 감정을 지니며 오늘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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